
어떻게 와플 기계가 나이키 신발을 바꿨나
세계적인 브랜드의 첫 혁신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나이키의 답은 연구소가 아니라 부엌이었습니다.
- 1969년, 선수를 다치게 한 새 트랙
- 1971년, 아내의 와플 기계로 첫 실험
- 1972년, 올림픽 선발전의 문 슈
- 1975년까지 와플 트레이너 10만 켤레
- 2011년, 뒷마당에서 돌아온 와플 기계
망가진 결혼 선물 하나가 어떻게 세계적인 운동화 브랜드의 출발점이 됐는지 따라가 봅니다.
영상에서 다 담지 못한 연표와 뒷이야기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1. 선수를 다치게 한 최신 트랙
1969년 오리건 대학은 육상 트랙을 새로 깔았습니다. 매끈하고 단단한 우레탄 트랙이었습니다.
트랙을 고른 사람은 육상 코치 빌 보워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키 자료에 따르면 이 트랙에서 선수들이 다치기 시작했습니다.
스파이크는 너무 깊이 박혔고, 평평한 바닥은 땅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 중간이 필요했습니다.
나이키의 러닝 역사가는 당시 러닝화가 발을 보호하는 고무판에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접지력과 쿠션은 뒷전이었다는 뜻입니다.
보워먼은 선수들의 신발을 직접 뜯어 고치던 코치였습니다. 가벼운 신발이 기록을 바꾼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고른 트랙이 선수를 다치게 한다는 사실은 무거운 숙제였습니다. 그는 2년 가까이 이 문제를 붙들었습니다.
같은 시기 미식축구장의 인조 잔디도 문제였습니다. 비 오는 날 선수들은 축구화 대신 농구화를 신기도 했습니다.
2. 결혼 선물을 망가뜨린 아침
1971년 어느 아침, 보워먼은 아내 바버라의 와플 기계를 바라봤습니다. 그의 눈은 와플이 아니라 격자무늬에 머물렀습니다.
그 기계는 1936년에 받은 결혼 선물이었습니다. 지름 15센티미터 남짓의 작고 둥근 기계였다고 가족은 기억합니다.
나이키 기록에는 버스테드 제조사의 251번 모델로 남아 있습니다. 35년 동안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와플 솔은 모든 것을 바꿨다. (나이키 러닝 역사가 릭 로어)
그는 액체 우레탄을 기계에 그대로 부었습니다. 우레탄이 굳으면서 기계는 영영 열리지 않았습니다.
보워먼은 포기하지 않고 중고 와플 기계를 몇 대 더 샀습니다. 첫 결과물은 돌기 대신 오목한 홈이 파인 거꾸로 된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타이어 가게, 기계공, 구두 수선공의 도움을 받아 틀과 재료를 고쳐 나갔습니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작은 기계로는 와플 네 장을 찍어야 신발 한 켤레가 나왔다고 합니다.
3. 몇 분 만에 부서진 시제품과 문 슈
초기 시제품은 몇 분만 달려도 부서졌습니다. 고무에 섞은 철사가 삐져나와 선수의 발목을 벤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1971년 11월, 오리건 대학 크로스컨트리 팀이 초기 와플 솔을 신고 전미 대학 선수권에서 우승했습니다.
| 연도 | 사건 |
|---|---|
| 1969 | 우레탄 트랙 설치 |
| 1971 | 와플 기계 실험 |
| 1972 | 올림픽 선발전 문 슈 |
| 1973 | 오리건 와플 출시 |
| 1974 | 밑창 특허 취득 |
| 1975 | 주문 10만 켤레 돌파 |
1972년 여름, 보워먼과 제프 홀리스터는 유진에서 열린 올림픽 선발전을 위해 시제품을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신발은 얇은 와플 고무판에 갑피를 꿰맨 수준이었습니다. 거의 맨발로 뛰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격자 발자국이 달 표면의 우주인 발자국 같다는 말이 나왔고, 신발에는 문 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문 슈는 대량 판매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작은 회사가 새 방향을 열 수 있다는 증거가 됐습니다.
4. 한 선수의 부탁이 만든 히트작
1973년 오리건 와플이 나왔고, 1974년 2월 보워먼은 밑창 구조로 미국 특허를 받았습니다.
와플 트레이너는 장거리 선수 존 앤더슨의 요청에서 시작됐습니다. 더 튼튼한 훈련화를 원했던 것입니다.
정형외과 의사와 족부 전문의까지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넓어진 바닥과 새로운 쿠션감이 특징이었습니다.
결과는 기대를 넘어섰습니다. 와플 트레이너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훈련화가 됐고, 1975년까지 주문은 10만 켤레를 넘었습니다.
때마침 미국에는 조깅 열풍이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스팔트와 흙길 어디서나 미끄러지지 않는 가벼운 신발을 원했습니다.
당시 회사 이름은 블루 리본 스포츠였습니다. 일본 운동화를 수입하던 회사는 1978년 공식적으로 나이키가 됩니다.
나이키 역사가는 이 신발을 문 슈의 실험을 세계적 제품으로 바꾼 다리라고 부릅니다.
- 트랙이라는 구체적 문제에서 출발
- 부엌의 익숙한 물건에서 형태를 빌림
- 실패한 시제품을 버리지 않고 개선
- 선수의 요청을 제품 설계에 반영
5. 흙 속에서 돌아온 와플 기계
보워먼은 199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버라가 버린 첫 와플 기계는 오랫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바버라는 생전에 첫 기계가 네모가 아니라 작고 둥근 자신의 결혼 선물이었다고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2011년 보워먼의 아들이 오리건주 코버그의 작업장을 고치다 땅을 팠습니다. 그곳에서 녹슨 와플 기계와 금형이 나왔습니다.
가족은 이 기계를 나이키에 넘기고 지역 육상팀 장비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비버턴 본사 아카이브에 있습니다.
| 항목 | 내용 |
|---|---|
| 첫 와플 기계 | 1936년 결혼 선물 |
| 재발견 | 2011년 |
| 문 슈 경매가 | 43만 7,500달러 |
| 경매 연도 | 2019년 |
2019년 문 슈 한 켤레는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운동화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2025년에는 문 슈가 패션쇼 런웨이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50여 년 전 실험이 새로운 세대를 만난 셈입니다.
혁신 = 새 재료 X
혁신 = 낯선 곳에서 빌린 형태 O
나이키의 첫 혁신이 남긴 원리는 이것입니다. 답은 문제 바깥의 익숙한 물건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부엌 일화는 나이키와 보워먼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브랜드 역사 정보이며 특정 제품 구매를 권하지 않습니다.
출처: 나이키 공식 매거진, NPR 보워먼 가족 인터뷰(2011),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 소더비 경매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