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200번 던진 시계가 세계를 바꿨나
가장 튼튼한 시계는 가장 단단한 시계일까요? 지샥의 답은 정반대였습니다.
- 1981년, 떨어져도 안 깨지는 시계 기획
- 시제품 200개 이상, 3층 창문 낙하 시험
- 고무공에서 얻은 부유 구조
- 미국 하키 광고로 증명된 내구성
- 누적 출하 1억 개를 넘긴 상징
1. 깨진 시계에서 시작된 기획
1981년, 카시오의 젊은 엔지니어 이베 키쿠오는 기획서 한 장을 냈습니다. 내용은 단 한 줄이었습니다.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시계. 그는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시계를 보며 실망했던 경험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브랜드 공식 서사에서는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를 깨뜨린 일이 계기였다고 전합니다. 이 부분은 전해지는 이야기로 봐야 합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른 장면도 말했습니다. 연구소 근처 공사장의 작업자들이 진동 때문에 시계를 차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2. 3층 화장실 창문이라는 실험실
그는 8명으로 프로젝트 팀 터프를 꾸렸습니다. 목표는 이른바 트리플 텐이었습니다.
| 목표 | 기준 |
|---|---|
| 낙하 | 10m 자유낙하 |
| 방수 | 10기압 |
| 배터리 | 10년 수명 |
초기 시험은 소박했습니다. 시제품을 3층 화장실 창문 밖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고무와 우레탄으로 감싸 봐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한 부품을 강화하면 다른 곳이 깨졌습니다.
1년 동안 100개가 넘는 시제품이 부서졌습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둘 결심까지 했다고 합니다.
3. 고무공이 알려 준 답
휴일에 짐을 정리하러 나온 날, 그는 근처 공원에서 쉬었습니다. 아이들이 고무공을 튀기며 놀고 있었습니다.
공 속처럼, 심장을 띄우면 된다.
그때까지 팀은 모듈을 단단히 감싸려고만 했습니다. 방향을 바꿔 모듈을 몇 개의 점으로만 지지해 공중에 띄웠습니다.
이것이 부유 구조입니다. 지금도 지샥의 기본 구조로 쓰입니다.
2년 동안 시제품 200개 이상을 거친 끝에 1983년 첫 모델 DW-5000C가 나왔습니다. 가격은 1만 1,400엔이었습니다.
4. 일본은 외면했고 미국은 열광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얇은 시계가 유행이었습니다. 투박한 지샥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판매상도 반기지 않았습니다. 수리가 큰 수익원이었는데, 안 깨지는 시계는 그 수익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반전은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이스하키 선수가 지샥을 퍼크처럼 때리는 광고가 방송됐습니다.
과장 광고라는 의심이 나오자 여러 방송이 같은 장면을 재현했습니다. 시계는 멀쩡했고, 의심이 곧 증명이 됐습니다.
1990년대에는 스트리트 패션, 스케이트보드, 서핑 문화가 지샥을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에서도 품귀가 일어났습니다.
5. 브랜드 연대기와 남은 원리
| 연도 | 사건 |
|---|---|
| 1981 | 기획 제안 |
| 1983 | DW-5000C 출시 |
| 1996 | 메탈 MRG 출시 |
| 2017 | 누적 1억 개 돌파 |
| 2018 | 35주년 순금 모델 |
35주년에는 770만 엔짜리 순금 모델 35개가 금세 팔렸습니다. 만 엔대 레진 시계가 명품 영역까지 닿은 셈입니다.
오늘날 하무라 연구소에서는 전용 장비로 충격을 시험합니다. 창문이 기계로 바뀌었을 뿐 질문은 그대로입니다.
강함 = 버티기 X
강함 = 흘려보내기 O
지샥이 남긴 원리는 이것입니다. 강함은 충격을 막는 힘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힘입니다.
이 글은 브랜드 역사 정보이며 특정 제품 구매를 권하지 않습니다. 출처: Nippon.com 이베 키쿠오 인터뷰, 카시오 G-SHOCK 공식 사이트, 아사히신문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