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왜 프랑스는 종이돈에 무너졌나
1720년, 파리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 부자가 됐다가 다시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그 중심에 종이돈이 있었습니다.
- 주인공은 스코틀랜드인 존 로입니다.
- 무대는 루이 14세 사후의 빚더미 프랑스입니다.
- 미시시피 회사 주가는 약 20배 뛰었습니다.
- 1720년 5월 칙령 하나로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1. 빚더미 왕국과 한 도박사
1715년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쟁과 궁전 건설로 국가 빚은 약 20억 리브르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린 루이 15세 대신 섭정 오를레앙 공이 나라를 맡았습니다. 그는 해법을 내건 한 남자를 만납니다.
바로 존 로입니다. 결투로 사람을 죽이고 영국을 떠난 수학 천재이자 도박사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단순했습니다. 금이 부족하면 종이로 돈을 늘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2. 종이돈이 만든 기적
1716년 로는 방크 제네랄을 세웠습니다. 세금을 지폐로 낼 수 있게 하자 지폐는 빠르게 퍼졌습니다.
1718년 은행은 왕립은행이 됐습니다. 돈이 돌자 상점과 공방이 살아났습니다.
초기에는 정말로 경제가 숨을 쉬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였습니다.
| 연도 | 사건 |
|---|---|
| 1716 | 방크 제네랄 설립 |
| 1718 | 왕립은행 전환 |
| 1719 | 주가 폭등 |
| 1720.5 | 가치 절하 칙령 |
| 1720.12 | 존 로 해외 도피 |
3. 미시시피 광풍
로는 루이지애나 무역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키웠습니다. 그곳에 금이 넘친다는 소문도 함께 퍼졌습니다.
주가는 500리브르에서 1719년 말 약 1만 리브르까지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국채를 주식으로 바꿨습니다.
캥캉푸아 거리는 밤낮으로 사람이 몰렸습니다. 이 무렵 '백만장자'라는 말이 퍼졌다고 합니다.
주식을 사려고 지폐를 찍고, 그 지폐로 다시 주식을 샀습니다.
은행과 회사가 서로를 떠받치는 구조였습니다. 지폐 발행량은 금과 은이 받쳐 줄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었습니다.
4. 칙령 한 장의 붕괴
1720년 초, 눈치 빠른 투자자들이 지폐를 금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금화 보유를 제한했습니다.
그리고 5월, 지폐와 주식 가치를 단계적으로 절반까지 낮춘다는 칙령이 나왔습니다. 일주일 만에 철회됐지만 늦었습니다.
7월에는 은행 앞에 몰린 인파로 사상자가 나왔다고 기록됩니다. 12월, 로는 프랑스를 떠났습니다.
- 지폐는 금 교환 약속이 깨지며 신뢰를 잃었습니다.
- 주가는 1721년 크게 떨어졌습니다.
- 로는 1729년 베네치아에서 가난하게 숨졌습니다.
신뢰가 있을 때: 종이 = 돈
신뢰가 깨질 때: 돈 = 종이
5. 남은 교훈
이후 프랑스는 오랫동안 '은행'이라는 말조차 꺼렸다고 전해집니다. 지폐 불신은 수십 년 이어졌습니다.
일부 학자는 이 트라우마가 재정 개혁을 늦춰 1789년 혁명의 배경이 됐다고 봅니다. 다만 이는 해석입니다.
오늘날 지폐도 금이 아니라 신뢰로 움직입니다. 로의 실패는 그 신뢰를 얼마나 쉽게 쓸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 구분 | 존 로 체계 |
|---|---|
| 장점 | 유동성 공급 |
| 약점 | 과잉 발행 |
| 결말 | 신뢰 붕괴 |
이 글은 역사 교양 콘텐츠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입니다.
참고: 앙투앤 머피 『John Law』, 찰스 매케이 『대중의 미망과 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