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베클리 테페는 언제 농경보다 앞섰는가?
농사를 짓기 전에 신전부터 세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과서 순서를 뒤집은 언덕 이야기입니다.
- 축조 시기는 기원전 약 9600년입니다.
- 지은 사람은 수렵채집인이었습니다.
- 스톤헨지보다 약 6천 년 앞섭니다.
- 땅속에 구조물이 최소 20개 더 있습니다.
- 신전설은 최근 수정되고 있습니다.
1. 배불뚝이 언덕의 정체
괴베클리 테페는 튀르키예 남동부 샨르우르파 근처에 있습니다. 이름은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1963년 조사단은 이곳을 중세 무덤 터 정도로 여기고 지나쳤습니다. 흩어진 석회암 조각은 묘비로 보였습니다.
1994년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는 땅에 박힌 돌이 T자 기둥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먼저 신전이 있었고, 그다음 도시가 생겼다." 슈미트가 남긴 해석입니다.
2. 언제 세워졌나, 숫자로 보는 연대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 가장 오래된 층은 기원전 약 9600년으로 나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1600년 전입니다.
이때는 빙하기가 막 끝난 직후였습니다. 도기도, 금속도, 바퀴도 없던 시대입니다.
| 유적 | 연대(기원전) |
|---|---|
| 괴베클리 테페 | 약 9600년 |
| 작물화 밀 확산 | 약 8500년 이후 |
| 스톤헨지 | 약 3000년 |
| 기자 대피라미드 | 약 2560년 |
스톤헨지보다 약 6천 년, 대피라미드보다 약 7천 년 앞섭니다.
3. 돌기둥이 말하는 것
기둥은 높이 최대 약 5.5미터, 무게는 10톤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원형 돌담 안에 둥글게 서 있습니다.
기둥에는 여우, 멧돼지, 뱀, 독수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일부 기둥에는 팔과 손, 허리띠가 있어 사람 형상으로 해석됩니다.
- 근처 채석장에서 돌을 직접 떠냈습니다.
- 도구는 돌과 뼈뿐이었습니다.
- 수백 명의 협업이 필요했을 것으로 봅니다.
가장 유명한 43번 기둥은 '독수리 돌'로 불립니다. 이를 혜성 충돌의 기록으로 보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미검증 가설이며 학계 다수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4. 농경보다 앞섰다는 말의 진짜 의미
오랫동안 정설은 농사가 먼저이고 정착과 문명이 뒤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괴베클리 테페는 그 순서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1997년 유전 연구는 작물화 외알밀의 조상을 근처 카라자다으 산에서 찾았습니다. 유적에서 약 30킬로미터 거리입니다.
그래서 거대한 공사에 모인 사람들을 먹이려고 야생 곡물을 집중적으로 거두다가 농경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다만 이것은 인과가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정설: 농경 → 정착 → 신전
가설: 모임·신전 → 곡물 집중 → 농경
5. 아직 끝나지 않은 발굴
2018년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습니다. 지구물리 탐사 결과 땅속에는 원형 구조물이 최소 20개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최근 발굴에서는 주거용 건물과 빗물 저장 시설이 확인됐습니다. 순수한 신전이 아니라 사람이 살던 마을이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 견해 | 핵심 | 현황 |
|---|---|---|
| 신전설 | 순례 성소 | 수정 중 |
| 정착설 | 주거·저수 확인 | 힘 얻는 중 |
| 혜성설 | 43번 기둥 기록 | 미검증 가설 |
인근 카라한 테페 등 '타시 테펠레르(돌 언덕들)' 유적도 함께 발굴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직 1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독일고고학연구소(DAI) 발굴 보고, Heun 외(1997), Banning(2023) 외.